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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당신 실수를 이 아이들이 커버했습니다 2011/06/16
  5. 여행 준비중 2011/06/02

범죄자

from ......... 2011/10/17 16:15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 역시 푸코를 중세오타쿠로서 중세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패션 학자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고쳐먹은 건 후에 그가 동료들과 감옥의 재소자들을 만나는 작업을 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였다. 

내 또래의 책벌레들처럼 나도 홈즈나 뤼팽을 열독하던 추리소설팬이었다. 치밀한 오타쿠는 아니어서 기억나는 건 별로 없지만, 어쨌든 그 시절 나 역시 범인을 잡는 것보다 범인과 탐정의 두뇌게임, 그리고 범인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 아주 약간이지만 범죄심리학이나 범죄인의 인권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나중엔 범죄심리학을 연구하리라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푸코를 다시 만났을 때,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후세의 지인들은 푸코가 각종 컴플렉스와 스타가 되려는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는 패셔너블한 학자였다는 이미지를 상품화하지만 그가 정부 정책을 만들고, 왕보다는 모델이 되고자 하고, 감옥에 갔다는 사실은 근대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몇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있던 나에게 분명 충격이었다.

푸코에 대한 찬양에는 관심없다. 하지만 그가 감옥과 범죄에 주목했다는 것은 그 후로 지금까지 내 머릿속의 거대한 벽과 같이 남았다. 푸코를 넘어서지 않으면 근대의 마지막 장을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근대를 넘어설 수 있을까? 범죄자를 보지 않고 푸코가 만든 벽을 넘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보수 우파는 범죄자에게 강력한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스스로 공동체의 질서를 수호한다고 선전한다. 역사적으로 범죄에 대한 다수의 인식은 이와 다르지 않다. 우파로서 이 인식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시민권의 확장을 주창하는 좌파에게 범죄자는 어떠한가?

난쏘공을 읽은 독자가 '우리 모두는 난쟁이다' 라고 외쳤다면 이는 어떤 함의를 지니는가. 여기서 난쟁이와 우리는 동의어인가? 그렇지 않다. 이 발화에서 난쟁이는 우리 모두가 벗어던져야 할 멍에지 그 자신은 아니다. 이때 그 우리 모두에 포함된 난쟁이는 어떻게 되는가. 그는 존재없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위의 발화는 우리 모두를 위해 난쟁이를 희생하고, 난쟁이의 시체 위에 우리 모두가 난쟁이가 아닌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셈이 된다. 위의 문장에서난쟁이를 범죄자로 치환해 보라. 우리는 범죄를 줄여야 한다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범죄자를 무존재로 만들 수밖에 없다. 이게 좌파의 딜렘마다.

범죄는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범죄자나 재소자의 인권을 얘기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이러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오히려 피해자의 사정이 범죄자의 사정에 비해 비어있는 영역이 돼버린 까닭에 피해자학이라는 분야가 새로 생겨나는 상황이다.

내가 주목하는 건 범죄자가 사회의 부산물이라면, 이들이 여생을 혹은 죽음을 사회적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처벌은 필요하다. 가능하면 강력하게 필요하다는 게 내 입장이다. 하지만 처벌의 지속은 속죄를 요구하는 행위의 영역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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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from ......... 2011/10/17 15:59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이란 불협을 계속하다가 결국 생사를 가르는 전선에서야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관계의 상호과정을 말한다. 굳이 주인과 노인이어야 했던 것처럼 이는 상호동등한 컴퍼넌트 간의 경쟁과는 달리 동등하지 않은 관계를 그 조건으로 한다. 동등하지 않은 관계를 동등하게 만드는 것, 이것을 헤겔은 근대의 현상으로 본 것 같다.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 그 사실을 우리는 즉각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노예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 도처의 노예를 우리는 용납하고, 이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영을 필수조건으로 하는 현대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노예를 용납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노예라는 발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가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적에 대한 태도로도 나타난다. 우리는 적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한다. 이는 적을 상정하는 순간, 그 적을 없애 무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적을 존재하도록 조력한 공범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투쟁의 역사는 경쟁 대신 궤멸의 레토릭을 사용한다.

그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적은 무존재로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가치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적을 무존재로 만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도무지 답을 할 수 없었다. 계급억압이나 성억압 같은 구체적인 사례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예민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근대인에게 적이 없는 사회라는 것은 가능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적이란 나와 적대적으로 폭력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 이상의 정의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관계는 전면적으로 부정될 수 없다. 구체적인 적, 그리하여 다음 적을 맞이하게 되는 경로상의 적은 논리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지금 각자가 상정하는 적이 영구한 적인지, 인스턴트한 적인지 확인할 길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적은 자신의 본성을 가리는 투쟁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존재다. 적을 포함한 나를 궤멸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적과 나의 균형을 맞추는 것 뿐, 그 이상은 과잉이다.

노예 역시 구체적인 무엇이 아니다. 누가 노예인가? 노예란 오히려 노예화를 촉진시키는 내 안의 본성을 갈등적으로 나타내는 대상이다. 우리는 이를 없애자고 말하지만 사실은 관조할 수 밖에 없다. 누구도 인간사회와 자연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노예화를 전면적으로 뿌리뽑아야 한다며 인생의 모든 초각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노예를 없애야 한다는 가치의 문제는 어떤 수준에서 어떤 대상에 작용할 수 있는 힘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분명한 타겟과 목적은 결국 노예에 대한 숙고에서 나오는 것이지, 노예를 없애야 한다는 슬로건에 호르몬이 반응해서 나오는 것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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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from ......... 2011/09/13 01:52
남에 대한 선의를 앞세우며 정교하지 않는 시혜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은 깨달아야 한다.
모두가 자기의 세계가 박살나지 않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문제를 느끼는 것은 완벽한 질서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에 선악을 판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상대를 잘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자기의 몸뚱아리 하나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 훨씬 정교한 관찰력이다.
정해져 있지도 않은 세계를 이해하거나 세팅하는 것은 그 후의 일.


-지혜를 가장한 온갖 악다귀가 난무했던 명절의 한 때를 보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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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준비중

from ......... 2011/06/02 15:29
이걸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지는 갔다와봐야 알 것 같은데
여튼 한 일주일 쯤 바다 보러 갔다올 생각이다
Tag // 바다, 여행